감천문화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둔 동네
*아미비석 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을 들러서 이곳을 가니 해가 기웃거린다
그리고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두워지고....
현재 찾아낸것만도 수백개라고 하니...
전쟁역사의 가슴아픔이 묻혀진 곳이다
미비하지만 올려봅니다....
**이곳 안내서에 의하면**
아미동 산 19번지 일대는 감천고개에서
산상교회 주변으로 이어지는 지역으로서
일제 강점기 시절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1950년 6. 25전쟁 발발이후 열차로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부산의 일대를 중심으로 피난촌을 꾸려나갔다
아미동의 경우 16,17,18,19통 일대에
집중적으로 피난민들이 분포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던 이 지역은
피난민들의 움막으로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고
공동묘지의 비석들은 건축자재로 사용됐다
집을 지을 마땅한 재료가 없던시절 비석과 상석은
축대를 쌓고 계단을 만드는 건축자재로 쓰였다
지금도 아미동 일대의 계단이나 담장에는
이때 피난민들이 사용했던 비석들이
곳곳에 박혀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근대사의 큰 아픔을 겪고
죽음과 슬픔의 장소로 남을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난
사람들의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 서구청의 적극적인 지원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어우러져
비석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도시재생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등으로
인해 소통과 화합의 희망적인
밝은 마을로 바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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