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보문사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서,
우리 나라 3대 관음영지(觀音靈地) 중의 한 곳이다.
이 절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전한다.
635년(선덕여왕 4) 4월,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壇)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신라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으나,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普德窟)에서
관음진신(觀音眞身)을 친견한 회정(懷正)이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
회정은 이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절의 역사는 사찰의 격에 비하여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 후기부터의 역사만이 전해지고 있다.
1812년(순조 12)에는 이 절의 승려들이
홍봉장(洪鳳章)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고,
1867년(고종 4)에는 경산(京山)이
석굴 안에 처마를 이어 나한전을 건조하였으며,
1893년(고종 30)에는 명성왕후의 전교로 요사와 객실을 중건하였다.
1911년 일제가 30본·말사를 제정하면서 전등사 말사가 되었다.
1918년에 대원(大圓)이 관음전을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주지 배선주(裵善周)가 객실 7칸을 새로 지었으며,
1935년에는 나한전을 중창하였다.
그 뒤 관음전을 중건하고 대범종을 조성하였으며,
1976년 범종각과 요사를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날씨가 너무 안좋아
아름다운 풍경을 못전해 죄송한 맘입니다
자꾸만 손을 보는것 같은데
좁은 소견으로는 전번이 훨~ 좋아보이니.... ㅎ
'*사찰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0) | 2017.11.06 |
---|---|
통도사 경내에는... (0) | 2017.11.01 |
보문사 마애좌불석상(눈섶바위) (0) | 2017.10.30 |
통도사와 국화 (0) | 2017.10.28 |
통도사의 가을 (0) | 2017.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