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그림의 향기*

[스크랩] 반 고흐 / 영혼의 편지

맘님 2016. 12. 22. 20:42

 

 

마지막 책장을 쉬 덮지 못하고...

그의 마지막 편지와 마지막 그림을 보고 또 들여다본다.

 

반 고흐...

행복이란 단어가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행복했다 말하고 싶다.

그것도 참으로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단,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이란 전제를 붙여야하는 아쉬움을 지우지 못하지만.

 

뿐만아니라 그에게 있어 그림은,

삶의 고통과 육신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고 신앙이었다.

 

 

그가 그린 자화상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드는 그림이다.

그의 그림에는 초기 농촌 풍경과 가난한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제외하면,

노란색이 참 많이 쓰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폭풍을 표현할때도 그랬고...<폭풍이 몰아치는 슈브닝겐 해안>

자신의 집과 침실을 그릴때도 그랬으며...<노란집, 나의방>

수확하는 농부 그림에서는 죽음의 이미지를 노란색으로 표현했다...<해뜰무렵 밀밭에서 수확하는사람>

 

자신이 원하는 색을 찾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가 찾아낸 천상의 색이 바로 노란색이 아니었을까...?

 

 

 

<폭풍이 몰아치는 슈브닝겐 해안...1882년 8월>

 

내게 유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작품이다.

거센 폭풍우가 몰려오고 서둘러 닻을 내려 실으려고 분주한 사람들...

무엇보다 황금빛 파도에서 힘이 느껴진다.

 

유화를 그리면서부터 고흐는 색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믿고,

색을 찾기 위한 연습에 몰두하지만 그럴수록 가중되는 경제적인 부담감은 늘 그를 목마르게 한다.

그나마 자신을 믿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동생 테오로 인해 그는 자신의 모든걸 그림 그리는데 걸

수 있었다.

 

 

<감자먹는 사람들, 1885년 4월>

 

고흐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둡기 때문에 주변색이 황금색이거나 구리빛이어야 한다는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진 그의 편지에서 언젠가는 진정한 농촌그림 이라는 평가를 받을거라고 확신한 작품이다.

 

밀레의 그림에서 많은 감동을 받은 고흐는,

초기에 이처럼 농촌 풍경이나 인물 그림을 많이 그렸다.

 

늙고 가난한 사람들을 아름답다 말하는 그는,

노약자와 고아,가난한 농부 등 그들이 서있는 자리에 배경이 되어주는 자연 그대로를 그렸기에,

그의 그림에서는 그들의 삶과 어우러진 냄새 또한 고스란히 배어 있다.

 

 

<별이 빛나는 밤...1888년 9월>

 

" 지도에서나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때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가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수단이라면 콜레라,결석,결핵,암 등은

천상의 운송수단인지도 모른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꽃병에 꽂힌 세 송이 해바라기...1888년 8월>                <꽃병에 꽂힌 열네 송이 해바라기>

 

 

고갱을 위해 그리기 시작한 해바라기이다.

고흐의 상징이 되어버린 노란 해바라기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아래에서 잠들 수 있는것,

그림을 그릴 수 있느 물감이 있고,

매일 먹을 수 있는 빵이 있으면 충분한 그가,

고갱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그린 해바라기이다.

 

 

그림과 화가에 대한 기억 몇 토막...

 

여고 1학년때 무척 예뻤던 담임 선생님...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무조건 좋다며

언제나 미술 선생님과 함께 다녔었다.  그런 선생님들 두고 우린 텁수푹한 수염에

볼록한 배를 내밀고 다니는 미술선생님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었다.

 

나도 그랬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숙제로 그려온 우리반 반장의 어촌마을 포구 풍경에 넋이 빠진적이 있다.

 

화가를 알고 지낸적이 있었다.

일에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그림이 아니어도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했다.

그런 그를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으로만 보려 했던것 같다.

그도 내게 주문을 한적이 있다.  그림을 뺀 자신의 모습을 보아 달라고.

그게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연이가 다섯살때였다.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왔는데 깜짝 놀랬다.

농촌 외딴곳에 있는 교회를 그렸는데 비록 스케치일망정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솜씨였다.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서...

 

한때는 나도 편지쓰기에 많은 시간들 할애하며 살던때가 있었다.

여고시절 단짝친구 영수에게 방학이면 거의 매일 편지를 써서 빨간 우체통에 집어 넣었고,

여고 1학년 여름방학때 함양에 있는 외갓집에 가서 알게된 산골 친구 호야와는 1년여동안,

일주일에 한통씩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그 친구와의 편지왕래는 아마도 엄마의

방해로인해 끊겼던것 같다.

 

메마른 감성을 탓하기보다는 문명의 이기를 탓하며 편지쓰기가 힘들어진 요즘...

나도 고흐처럼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보아줄 사람만 있다면,

나도 누군가에게 내 영혼을 담은 편지를 정성껏 쓰고싶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년 7월...고흐의 마지막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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